대한민국민주주의전당. /경남도민일보 DB


창원시가 대한민국민주주의전당 설계·시공 단계에서 스스로 명시한 '장애인 관람 편의' 기준을 이후 지키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시가 직접 과업지시서에 접근성 기준을 적어놓고도 이를 어겨 장애인 접근권을 사실상 외면한 셈이다.
과업지시서 곳곳에 "장애인 배려" 명시
<경남도민일보>는 민주주의전당 착공(2022년 4월) 1년 전에 만들어진 39쪽짜리 '창원시 민주주의전당 전시설계 및 제작설치 과업지시서'를 입수했다. 해당 문건에는 장애인 접근성을 확보하라는 문구가 여러 차례 등장한다.
내용을 보면, 5쪽 전시·개념구성 '전시 방향' 지침에 '노약자·장애인의 바다이야기고래 관람 편의를 고려한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뒤이은 8쪽 '전시 동선 구성'란에는 '장애자와 노약자를 위한 동선을 배려한다'고 기재됐다.
13~14쪽 전시물 설계 관련 지침에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전시물 설계', '장애인시설 등 전시장에 필요한 설비·물품 제작·설치', '장애인을 위한 시설 보완 및 시각장애인을 위한 전시물 제작•설치' 카카오야마토 등이 담겼다.
또한 21쪽 '분야별 세부 지침'에는 '모든 전시 시설과 전시·체험물이 서울시 유니버설디자인 가이드라인(성별·국적·장애 등 차별 없는 공공건축물 건립 지침)에 따라 시각장애인·어린이·노인·임산부 등 관람 편의성을 고려해 설계돼야 한다'는 내용이 명시됐다.

22쪽에서는 경사로, 점자 안내 우주전함야마토게임 판 등 관련 법규 준수 항목까지 상세히 제시됐다. 사인물 제작 지침에도 '시각장애인 등 관람 편의성을 고려해 모든 사인물을 제작•설치해야 한다'는 조항이 담겨 있다.




창원지역 학생들이 지난 9월 24일 오전 대한민국민주주의전당을 찾아 내부 전시를 관람하고 알라딘릴게임 있다. /최석환 기자


점자·음성·수어 전무…일부 공간 이용도 불편
장애인 접근성 강화 지침은 설계·제작·조명·전시 동선·사인물·유지관리 등 과업지시서 전 과정에서 10여 차례 반복된다. 그러나 실제 완공된 전시관에는 이러한 기준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점자 바다이야기예시 안내나 촉각형 전시물, 음성 전시 해설, 수어 영상 등 기본적 접근 체계조차 없다. 장애인단체는 전시 지원 부재뿐 아니라 전당 안 장애인 화장실 구조가 휠체어 이용에 부적합하거나 접근이 어렵다는 점도 지적한다.
문제는 창원시가 스스로 만든 공식 지침을 어겨놓고도 단순 예산 부족인지, 시공 과정에서 누락인지조차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시 담당이 아니라는 게 이유다. 과업지시서는 입찰·설계·제작 과정에서 반드시 준수해야 하는 '기준 문서'인데, 건립 과정에서 관리·감독이 충분했는지도 밝히지 못한다. 민주주의전당 시공업무를 맡았던 인테리어 전문업체 시공테크 관계자는 통화에서 "할 이야기가 없다"며 답변을 회피했다.
송가영 경남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집행위원장은 "장애인 전시 관람 지원 기준이 명확하게 적혀 있었는데도 지켜지지 않았다면, 이는 단순 누락 수준이 아니라 행정 부실 감독 문제"라면서 "완공 전후에 점검했어야 하는데, 책임을 방기한 것으로 보여 아쉽다"고 말했다. 이어 "지침을 만들어놓고 지키지 않는 일이 반복돼 기운이 빠진다"면서 "건립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점을 다시 점검해 개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올해도, 내년에도 장애인 전시 관람 지원 '0'원
창원시는 이런 상황을 잘 알면서도 개선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시는 점자·음성 안내 시스템 등 장애인 전시 접근성 강화 목적 예산을 내년도 본예산에 단 한 푼도 편성하지 않았다. 이 예산안은 현재 창원시의회 심의를 앞두고 있다.
시민사회는 "장애인도 관람하기 어려운 민주주의전당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이야기할 수 있느냐"고 비판한다.
백남해 대한민국민주주의전당 제대로 만들기 시민대책위원회 특임위원장은 "장애인 전시 지원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은 매우 유감스럽다"면서 "세금으로 운영되는 곳인데 과업을 이행하지 않은 것은 국민을 배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민주주의는 모든 백성이 주인이 된다는 뜻"이라면서 "누구도 어떠한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 모두를 더 귀하게 주인으로 대접하도록 시설 개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당장 예산 부족 문제로 과업지시서 내용을 어긴 거라면, 시는 연차적으로나마 비용을 늘리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 그러나 내년 예산 내역상 그런 의도는 조금도 엿보이지 않는다. 이렇다 할 개선 계획 없이 행정안전부만 바라보고 있다.
시는 내부 전시내용 개편에 쓸 용역비(8000만 원)를 자체 편성했다. 이 비용은 국민의힘이 다수 의석을 차지하는 창원시의회에서 대폭 축소되거나, 아예 불허될 조짐이 벌써부터 감지된다.
이쾌영 창원시 문화시설사업소장은 "완벽하게 준비하려고 했지만, 장애인 관람 편의 부분은 부족한 점이 있었다"며 "미비점은 앞으로 개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최석환 기자